뉴욕에서 만나 동고동락한 한인들

게스트하우스에서 생활을 하다보니 여러명의 사람들이 잠시 머무르다 다른곳으로 이동하곤 한다.
2달 이상 머무는 나 같은 경우는 장기 투숙자에 속한다.

나 처럼 장기 투숙자는 4명이 있었는데 그들은 모두 나이가 많았고, 학생비자를 받아 뉴욕에서 어학연수 비슷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

보통 어학연수라 하면 TV에서나 보는 푸른 잔듸가 펼쳐진 캠퍼스가 있는 한 대학교를 다니며 수업도 열심히 듣고 학생비자로 정해진 시간만큼 아르바이트도 하며 보람된 하루 하루를 지내는 것. 어학연수를 마치고 나면 영어를 자연스럽게 구사할 수 있게 되는 것을 생각하곤 한다. 이러한 어학연수 생활을 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뉴욕에서 생활하던 짧은 기간동안 내 주위 사람들은 달랐다.


뉴욕에서 머물던 게스트 하우스




아는형 1.

어떻게 구하는지 매일같이 한국의 버라이어티쇼를 다운로드 받아서 하루종일 낄낄 거리다 배가 고프면 밥먹고, 음식이 떨어지면 장 보러 가자고 보챈다. 이 집의 리더같은 존재였는데 밥은 잘 챙겨먹는다. 덕분에 나 할일 못하고 장 보러 끌려갈 때가 많았다.

그 형은 아마도 유학원을 통해 소개 받았을 법한, 학교도 아닌 영어를 가르치는 학원과 비슷한 기관에 다녔다. 그나마 출석률이 높은 것도 아니다. 학원을 마치고 집에 오면 하루 종일 인터넷, 한국 버라이어티를 보며 빈둥빈둥 대며 나에게 이런 얘길 종종 했다.

"나는 왜 영어가 늘지 않지? 영어좀 가르쳐줘"

뉴욕까지 와서 나한테 영어를 가르쳐 달라고 하는 건 뭐람?


아는형 2.


역시 유학원을 통해 영어학원 비슷한 기관에 다녔었고 집에서 돈은 보내주었지만 가정 형편이 한눈에도 넉넉치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공부라도 열심히 하면 좋으련만 결석 일수가 너무 잦아 결국 I-20인지 뭔지 하는 비자를 받지 못해 한국으로 쫓겨날 신세가 되었다.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한인 구직사이트를 검색해서 일자리를 구했다. 한인이 운영하는 술집이었다. 슬프게도 해외에서는 한인이 한인 등처먹는다는 말이 맞을때가 많다. 짧은 시간 뉴욕을 여행하는 동안에도 여러번 봤고, 이후 호주를 여행할 때도 그랬다. 

아는형 2는 일을 했지만 보수가 너무 작은 나머지 생활고에 시달리고, 그런 상황에서 게스트 하우스에서 만난 여자와 눈이 맞아 공부는 더욱 할 수가 없었다. 통장 잔고가 거의 남아있지 않아 나에게 돈까지 빌렸던 그 형이 첫 주급으로 한 일은 담배구입. 뉴욕은 담배가 비싸다. 당시 환율로 한 갑에 만 원이 넘는 금액이었다. 

애석하게도 어디가서 길 한번 물어보는 영어도 하지 못하다가 한국행을 했다. 그렇게 6개월간 뉴욕 유학을 마치더라.





아는 누나 1.

누나들과는 이야기를 많이 하지 않아 어떤 비자를 받아 어떻게 왔는지는 모르지만, 이 아는누나 1은 한인이 운영하는 미용실에 다니고 있었다. 아는형1의 여자친구였으며 다른 거처가 있었음에도 매일같이 찾아와 남자친구와 밤을 보내곤 했다. 한가지 확실한 것은 영어에 목적이 있었던 누나였지 미용실 취직은 목적이 아니었다. 
역시나 실패후 한국으로 돌아갔다.


아는누나 2.

가장 착실했던 누나이다. 학원에도 꼬박꼬박 나가고 방 안에 틀어박혀 뭐라도 하는듯 했다. 밥 먹으라고 부르면 쫄래쫄래 나와서 밥 먹고 설거지도 하고, 함께 장도 많이 보러 다녔다. 아는누나2는 일은 하지 않았고 집에서 보내주는 돈으로만 생활을 했다. 
함께 있을 땐 영어를 쓰지 않기 때문에 영어를 얼마나 구사하는지 알지 못한다. 한국에 돌아와서 가끔 얘기를 나눴는데 역시 언어는 하루 아침에 늘진 않나보다.


이들과 생활하며 남는 기억은 돈 모아서 장보러 다닌 일, 한국음식 해먹은 일, 할렘에 갔던 일 말고는 딱히 떠오르는 게 없다.

내 하고싶은 일을 못하고 다 함께 장보러 가는 것이 가장 나를 귀찮게 했는데, 형이 가자고 하면 가야했다. 안그러면 잘 어울리지 않는다고 뒤에서 욕하고 함께 사는 집에서도 모른 체 하며 지내기 때문이다. 쉬운말로 왕따를 당하기 때문. 그런 사람들이 몇 몇 있었다. 한국 문화가 원래 공동체를 중요시 여기기도 하고, 군대를 다녀온 남자라면 더더욱 단체생활에 익숙해져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해외에서도 이럴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들이 원하는 건 영어를 배우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영어를 24시간 쓸 수 있는 환경에 있는 것 만으로도 부족할텐데 학원 다니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이렇게 한인들끼리만 똘똘뭉쳐있으면 뭐하러 비싼 돈 주고 뉴욕까지 와있을까 하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똑같은 일을 한국에서도 할 수 있는데 말이다.

여행자의 입장에서 잠시나마 한인들을 만날 수 있어 나에겐 좋은점이 많았지만, 이들의 생활 패턴은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참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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