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tter than nothing. 긍정적인 생각과 첫 주급


오늘도 학원 수업을 마치고 아르바이트를 하러 간다. 

사실 여행 내내 좋은 일만 있었던 건 아니다. 
다른 친구들과 일을 할 때는 괜찮은데 매니저 에란과 함께 일을 하면 그날은 완전 녹초가 되어버리곤 한다. 
왼쪽부터 크리스티나, 에란, 레이
직원들에게 도무지 쉴 틈을 주지 않는다.



소스가 담긴 그릇을 씻고 나면 기름을 갈아야 하고, 그 와중에 주문이 들어오면 닭을 튀기고 또 다시 갈던 기름을 갈고, 일이 끝나자마자 행주 여러개를 빨아서 밖에 널어야 하고 행주를 빨다가 또 다른 주문이 들어오면 닭을 튀기고, 또 다시 행주를 빤다. 
잠시 10분 정도의 쉬는 시간을 가진 후.

에란이  “Cho! everything ok?” 라고 물어보면 나는 “ok”라고 대답하고, 그러면 에란은 냉장고를 닦으라고 한다. 
주문은 계속 들어오고, 에란은 무언가를 자꾸 시키고, 그렇게 8시간을 일하고 집에 돌아오면 녹초가 되어버린다. 

일하는 척. 설정


함께 일하는 친구들 모두 에란만 있으면 바빠지고 없으면 에란 욕을 한다.
뒷담화, 어느 나라나 다 같은가보다.





터벅, 터벅 지친 몸을 이끌고 집으로 가는 길에 에디를 만나 근처 버스정류장에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에디는 오늘도 다른 일자리를 찾지 못했다고 한다.  
에란이 자신에게 일을 많이 주지 않는다고,  주말에만 주로 일을 시켜서 다른 일자리가 필요하다고 한다. 



나는 에란이 일을 너무 힘들게 시킨다고 불평을 한다. 
그러면 에디는 너는 다른 사람에게 에란이 하는 것 처럼 하지 말라고, 그것도 배움 중의 하나라고, 이 일을 하는것이 일자리가 없는 것 보다 낫다고 한다. 
맨날 농담만 던지는 친구인줄 알았는데 이럴땐 진지한 면도 있다.

It's better than nothing.

불평 불만이 살포시 고개를 들려고 할 때 에디를 만나 대화를 나눈 건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내 일터. Wing Zone.



드디어 첫 주급!!

첫 주급으로 $280를 받았다.

시간당 $71를 받고 34시간을 일한 주급이다. 
합법적으로 아르바이트를 한게 아니라서 돈은 현금으로 받았다. 
때는 2008년 9월. 당시 플로리다주의 최저임금은 $6.79였다.

해외에서 처음 일하고 받은 주급, 뭔가 대단한 업적을 이룬 듯 한 뿌듯함을 느낀다.

무언가 해냈다는 자아도취에 빠져 집으로 가는 발걸음은 매우 가볍다.


여행과 어학을 동시에. 좋은 만남은 덤으로.



일도 하고, 여기저기 구경도 많이 하고 이제야 어학 공부에 대해 말하려 한다.

마이애미비치에 도착 하자마자 며칠간 유스호스텔에 머무는 동안 길 건너 바로 앞에 위치한 건물을 보면서 '저긴 뭘까?' 하는 생각을 하곤 했다.
Language Center.. 보통 학원이나 학교는 Academy, Institute, School, 뭐 이런걸 쓰기 마련인데 Center라... 



 

건물엔 각국의 국기들도 걸려있고 건물 디자인도 아기자기하다.
유스호스텔에서 만난 한 러시아 친구가 그곳에서 영어를 배운다고 해서 나도 한번 가봤다.

학원비 : 4주에 $299.
주 4회 하루 2시간씩.
한달에 30만원 돈이면 한국과 다를게 없다. 
룸메이트도 소개시켜준 고마운 학원인데다가 영어도 배울 수 있으니 $299 정도야 가뿐했다. 
무엇보다도 일자리가 생겼기에 부담이 없었다.

학원에서 만난 에스테르. 스페인 사람인데 So Hot이다. 
치마를 입은 채 분홍색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그녀. 지각을 매일 한다. 
한번도 거르지 않고 지각을 한다. 
왼쪽부터 마를린, 에스테르


남미 사람들의 시간 개념은 우리랑은 많이 다르다. 
지각을 했다고 해서 허겁지겁 교실로 들어오지 않는다. 
로비에 비치된 커피포트에서 커피 한잔을 여유롭게 내린다. 
느긋하게 커피를 손에 든 채로 교실 문을 열며 웃으며 인사한다. 

덕분에 지각 한번 안하던 나도 지각이 자연스러워졌다. 

학원. 친구들과


학생은 6명에 선생님은 캐나다인이다. 
사실 학원도 도움이 많이 됐지만 무엇보다 한국인이 없는 환경에서 홀로 지냈던 것이 언어를 배우는 것에 가장 도움이 되었다. 
집에 가도, 일을 하러 가도, 밖을 돌아다녀도 영어를 써야만 하는 환경이었고 한국에서 나름 정말 열심히 단어암기, 문법, 독해를 했었던 이유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학원수업 두 시간은 훌쩍 가버렸고 몇 블록 떨어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일터로 출근을 한다.

마를린과

자전거를 타고 오는 마를린



내가 마이애미를 떠나던 날 

"조~ Kiss me~"라고 말하며 자신들의 볼을 내밀었던 마를린과 에스테르가 아직도 생각이 난다. 
왜 페이스북이 그때는 없었을까? 
마를린은 웃음도 많지만 말도 많다. 
법도 엉망인데다가 말도 참 빨라서 영어로 말을 시작하면 몇몇만 알아듣는다. 
그렇다고 해서 전혀 창피해 하거나 주눅들지 않는다. 
오히려 특유의 당당함으로 선생님을 나무랄 정도. 덕분에 웃을일도 참 많았다. 
우리도 영어 말하기에 자신감을 가지고 마를린처럼 한다면 언어학습이 더 재밌어겠지?

즐거운 학원 생활.
특정한 생활반경이 정해져있는 어학연수가 아닌 관광비자를 받아서 놀면서, 불법으로 일도 하면서, 취미로 학원도 다니면서 이러고 있다.  
내게 다신 없을지도 모를 20대의 특별한 여행. 
충분히 만끽하고 있다.

부모님에게 욕하는 자식. 노후대책. 여기는 플로리다.


일을 마치고 집으로 왔는데 집안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충격적이다. 토니와 토니의 딸이 말싸움을 하는 중. 
토니의 딸은 두 아들을 가진 30대 아줌마이다. 
이날 토니의 딸을 처음 보았는데 처음 모습이 싸움이라니.

언뜻 봐도 키 180에 몸무게 90kg 이상이다. 
거구의 포스가 장난이 아니다.

토니 : “Fuck you~~~~~~~~~~~~``!!!!" (목소리 엄청 큼.)
딸 : “Fuck you??? You fuck you!!!"
토니 : “Get out~~~~~~~~~~!!!!!!!!!!!!!!!!!!!!!!!!!!!!" 


왼쪽부터 토니, 맥, 러셀


당시 머물던 쉐어 아파트


러셀이 토니의 바나나를 먹어서 싸울 때와는 톤 자체가 다르다. 
토니의 목소리가 그렇게 큰 줄은 처음 알았다. 

러셀은 토니의 딸을 밖으로 내보내고 토니는 딸에게 “Fuck you!!"라고 소리치고 딸도 아버지에게 "You Fuck you!!"라고 소리친다. 

가관이다. 아이들이 보고 있는데, 아이들은 안중에도 없다.
그렇게 토니의 딸은 화를 내며 자신의 집으로 차를 몰고 사라진다.
전후 사정은 어떤지 몰라도 어떻게 자신의 부모에게 저렇게 욕을 할 수가 있을까? 
사춘기 애도 아니고.
사실 이건 이곳의 문제만은 아니다. 
한때는 동방예의지국이라 불렸었던 우리나라도 마찬가지 이니까.


언제부터인가 노후준비라는 단어가 들려오더니 지금은 누구나 대비해야만 하는 이슈가 되었다.
노후준비를 다른 말로 표현하면 ‘당신이 늙으면 아무도 당신을 보살펴 주지 않을 테니 젊어서 부지런히 준비 하세요.’

자식을 낳아 자식농사를 잘 짓는 것 만큼이나 완벽한 노후준비가 또 있을까? 
맞다, 시대가 바뀌었다. 
옛날 1980년대 대가족 시절을 생각하기엔 이미 많은 시간이 흘러버렸다. 
그 때문일까? 
노인 학대, 방치는 이미 심각한 사회적 문제가 되었고 그들을 위한 실버타운이라는 새로운 사업도 생겨난지 오래다. 
노인복지사 자격증은 미래유망업종중의 하나가 되었고 낳아주신 부모님은 짐이 되어버리곤 한다.

역지사지 (易地思之)

내가 나중에 평생을 사랑해온 자식에게 방치를 당하는 입장이라면 또는 더 심각한 상황인 학대를 당한다면 어떤 기분일까?
자식이라면 당연히 부모님을 공경하고, 부모님은 노후를 위한 펀드나 저축예금에 투자 할 필요가 없는 사회가 정말 사람 사는 세상 아닐까?

어릴 적, 추운 겨울날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 나의 꽁꽁 언 두 손을 이불속에 넣어주시던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살던, 
받아쓰기를 100점 맞아서 빨리 집에가서 엄마에게 자랑하고 싶었던, 
만화 영화를 보다가 아빠가 퇴근해서 들어오시면 동생과 달려가서 안겼던 그때를 추억해본다.
나의 살던 고향. 강원도 철원.

예전 고향집. 그립다.

Eddie. 직장동료. Korea. North or South? and... Sea of Japan.


나의 직장(아르바이트이기 때문에 직장이라 부르기 그렇지만)동료인 에디.

열심히 일을 하고 있는데 선글라스에 꼬질꼬질한 차림으로 키 작은 곱슬머리 남자 한 명이 자전거를 문 밖에 세우고 들어온다.

Are you guys hiring?(직원 구하나요?) 에디가 처음 뱉은 말이다. 



나는 잠시 기다리라고 말을 한 후 메니저에게 구직자가 왔다고 말했다. 
매니저를 기다리며 Eddie와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미국은 처음 보는 사람들 끼리도 참 이런 저런 얘기를 잘 나눈다. 
그러면서 이미 우리는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을 거라는 느낌을 받았다. 
아니나 다를 까, 다음 날 Eddie가 출근하여 우리는 같이 닭 날개를 튀기기 시작했다. 
여기저기서 많이 아르바이트를 해본 Eddie는 오히려 날 도와주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어느새 베스트 프렌드가 되어버린 Eddie. 
일을 마치면 함께 해변에 가서 맥주도 마시고, 스케이트 보드도 타고, 수영도 다녔다. 

멕시코인인 아버지 탓에 Eddy는 스페인어와 영어를 자유롭게 구사가 가능했다. 
덕분에 스페인어도 조금은 알아듣게 되었다.
하루는 일을 마치고 함께 Irish Pub으로 향했다. 
힘든 하루 일과를 마친 후 맥주 한잔의 휴식. 
밖엔 비가 내리고 바람은 상쾌하다. 
분위기역시 좋다. 
여긴 플로리다 마이애미이다.



“where are you from?"

바 옆 자리에 앉은 사람이 말을 건다.


“Korea."
라고 대답을 하니
“which part? South or North?"
라고 물어본다.
“South"라고 하니 South 가 좋은 한국인지 나쁜 한국인지 물어본다.




어릴 때 부터 우리 나라가 유일한 분단 국가라고 항상 배우곤 한다. 
매번 북한 정계에서 하는 일을 보면 한심하고 불쌍하기도 하지만 원래 분단되지 않았었던 한 나라였던 것을 생각하면 안타까운 현실이다. 
하지만 언젠간 평화통일이 될 거라고 확신하면서 이런 생각이 가지곤 한다.
그때가 되면 Korea를 Corea라고 바꾸는 것이 어떨까?

  1. 믿거나 말거나 ( 나의 초등학생 시절.)

선생님 : 우리나라가 왜 Korea 인지 아는 사람?
우리들 : (조용...)
선생님 : 원래 우리나라는 Corea 였어. 하지만 일본이 우리나라를 강점하고 있을 당시에 Corea의 C가 Japan의 J보다 앞에 있다는 이유로 C를 K로 바꾸었지.

믿거나 말거나, 하지만 어느정도 근거가 있는 이야기이긴 하다. 원래 사람들은 때때로 사소한거에 목숨을 걸곤 하니까.
통일이 되면 Korea를 Corea로 바꾸면 어떨까? 라고 생각해 본다. 
더 이상 지도에서 South Korea, North Korea를 볼 수 없기를 바라면서. 
Sea of Japan이 사라지길 바라면서...



하나 더!
Sea of Japan을 East sea라고 우린 주장한다. 맞는 말이다. 말 그대로 동해, 동쪽에 있는 바다이니까. 하지만 East sea 로는 뭔가 부족한 감이 있다. 

어차피 아직도 Sea of Japan으로 더 많이 알려진 거 Sea of Korea, 또는 East sea of Korea로 바꾸는 건 어떨까?

Language School 지구본에 새겨진 sea of japan을 sea of Korea로 바꾸었다. 



경제, 독도, 북한, 동해,,, 아직도 참 숙제가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