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일자리 구조조정이라니.


경기가 좋지 않아 다른 곳에 위치한 매장 하나를 정리하게 되었다. 

그곳에서 일하는 더 숙련된 요리사들 두 명이 우리 가게로 오게 되면 함께 일하던 멕시코 친구들 두 명은 이제 일을 그만두어야 한다.

“우벤띠노랑 오스바르도 내일부터 이제 나오지 말라고 얘기좀 해줘.”

과장님의 전화다.


Astol Place. 출근길
출근길
  

단 며칠 동안이라도 시간을 주는 것이 아니라 당장 내일부터 나오지 말라니, 이건 좀 너무했다. 

더군다나 이러한 메세지를 전해야 하는 입장에 서니 마음이 너무나 불편하고 미안해진다. 

그 친구들은 내일도, 모래도 계속 여기서 일을 하는 걸로 알고 있을텐데, 너무나도 갑작스러운 일일텐데... 게다가 밖엔 눈까지 내린다. 




뉴스에서만 보던 구조조정이다. 

밤 10시, 퇴근 시간이 가까워 오고, 멕시코 친구들에게 이야기를 한다.

 나 : 할 얘기가 있어.

 멕시코 : 뭔데?

  나 : 음,, 너희들 있잖아.

  멕시코 : 응

  나 : 이제 내일부터 그만 나와도 돼.

  멕시코 : 그럼 언제 나와?

  나 : 흠.... 이젠 더이상 나오면 안돼.

  멕시코 : 왜? 나 일해야 하는데? 나 돈 필요해.

  나 : ... 나도 잘 알아. 정말 미안해. 우리 가게도 지금 어려워서 이렇게 된거니까 이해좀 해줘. 
        다른곳에서 일자리 금방 구할 수 있을거야.

  멕시코 : .......

  나 : 정말 미안해...



가슴이 답답하고 너무 미안하다. 
그 친구들이 더 좋은 일자리를 찾기를 바라며 집으로 무거운 발걸음을 옮긴다.

Happy New Year in New York City


해외에서 처음 맞는 새해이다.

12월 31일. 며칠 전 부터 새해는 맨하탄에서 맞겠다는 계획을 세웠고 그날 밤 10시 반 쯤, 함께 쉐어하우스에 머무는 친구들과 맨하탄에 도착했다.

맨하탄 타임스퀘어 광장. 얼마 전 우리나라 대표 가수 싸이가 공연을 했던 바로 그 장소이다.



새해를 맞이 하러 나온 인파로 지하철이며 도로며 타임스퀘어 광장 주변 몇 km 교통은 전부 마비가 되었다.

타임 스퀘어 역은 지하철이 폐쇠되어 근처 몇 정거장 떨어진 곳에 내려서 타임스퀘어까지 걸어갔다.

새해를 맞이하기 위해 정말 많은 사람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사람들 속에서 이리저리 떠밀리며 카운트 다운을 할 때 까지 1시간 반을 추위에 덜덜 떨며 새해를 기다린다.

잠시 후면 2009년 새해.

여기 저기서 들려오는 환호소리와 경적 소리, 발 디딜 틈 없이 빼곡히 몰려든 사람들, 

그들의 안전을 담당하는 뉴욕경찰(NYPD)들, 

올 들어 가장 추운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타임스퀘어 광장엔 수많은 사람들이 빼곡히 모였다.


  드디어 카운트 다운!!

  “10! 9! 8! 7! 6! 5! 4! 3! 2! 1!”

  “Happy New Year~~!!”




현란한 폭죽과 수많은 사람들의 함성, 

그렇게 뉴욕에서 25번 째 새해를 맞이하게 되었다.  

나에겐 영원히 찾아오지 않을 것만 같았던 20살을 훌쩍 넘어 어느덧 20대 중반이다. 

지금까지 지내온 날들을 돌아보며, 좋았던 일들을 추억하며, 잘못했던 일들을 반성하며,,,

집으로 가는 지하철에선 또 다시 정신을 놓는다. 지하철만 타면 잠이 온다.

아침 일찍 일어나 자유의 여신상을 보러 간다.


뉴욕에 왔으면 당연히 자유의 여신상을 봐야 한다.
하루 일정을 정해 자유의 여신상을 만나러 간다.

이제는 뉴욕 지하철에 너무나 익숙해져 환승은 눈 감고도 한다.
Red Line지하철을 타고 South Ferry역에서 하차를 하고 Battery Park 쪽으로 성큼 성큼 걷는다.






 나에겐 외국인인 한 외국 커플이 다가와 그들에게도 외국인인 나에게 길을 묻는다.
"저도 처음 와봐요."

그냥 자유의 여신상이 보이는 쪽으로 계속 걷다보니 선착장이 나온다. 

아까 그 커플도 나보다 먼저 도착해 있었다.

자유의 여신상을 보려면 배를 타고 Liberty island로 들어가야한다.











선착장에서 왕복 10불을 내고 왕복 티켓을 구입하고 많은 사람들 틈에 끼어 줄을 서있다. 

날이 추워 허드슨 강엔 쪼개진 얼음들이 둥둥 떠다니고 강 바람은 날카로웠지만 갑판 위에서 주변 경치를 보며 자유의 여신상과 가까워진다. 



Liberty Island 선착장에 내리는 사람들

잠시 Liberty Island 주위를 둘러본 후 자유의 여신상 몸 속으로 들어간다. 


몸 속엔 역사를 보여주는 자그마한 박물관이 있는데 입장료는 왕복 페리 티켓에 포함되어 있으니 놓칠 이유가 없다. 





공항에서처럼 간단한 몸 수색 절차를 마치고 박물관에 들어선다.







짧은 관람 후 Liberty Island옆에 위치한 Ellis Island도 들른다. 
미국 이민자들이 처음 입국 심사를 받아야 했던 곳으로 지금은 뉴욕의 역사를 보여주는 한 관광지로 자리잡고 있다.



















콜럼비아 대학교 (Columbia University)


나 : 아니 왜 콜럼비아 대학교가 콜롬비아에 있지 않고 뉴욕에 있지?
아는 형 : 글쎄.

남미의 콜롬비아는 Colombia
여기는 Columbia 

IVY League중 하나인 뉴욕의 콜럼비아 대학교에 가봤다.

단순히 아이비리그 대학의 분위기를 느끼고 싶었다. 

맨하탄 상부에 위치한 콜럼비아 대학교. 생각했던 것 만큼 넓진 않았지만 아이비리그라는 자체로 풍기는 분위기는 학교 규모와는 별개였다. 
마침 눈까지 내려 그 운치를 더한다.


콜럼비아 대학 도서관

도서관 내부. 연회장 비슷한 곳도 보인다

교육대학 건물


눈 내리는 콜럼버스 대학 캠퍼스


지금 생각해 보니 건축중인 건물이 보이지 않았다.

"내가 대학생 때 잠시 대학 행정과에서 일을 한 적이 있는데, 수시 응시료만 40억 이더라고."
현재 함께 일하는 직장 동료가 얘기 해 주었다.

수시 응시료만 40억. 대학에서 요구하는 등록금, 입학금 등이 쌓이면 얼마나 많은 돈이 쌓이는지는 잘 모르지만 한국은 공사중인 대학교가 많다.
올라가는 건물의 수 만큼, 높이 만큼 교육의 질이 오르는걸까?

이후 여행한 보스턴의 하버드, MIT, 보스턴 대학 등.
나의 관점에서 캠퍼스 내의 건물들은 한 눈에 봐도 오래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다른 점이 있다면, 20년 후에는 건물이 낡아 철거하고 새로운 건물을 올리는 재개발식 건축물이 아니라
오히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고풍스러운 멋을 보이는 건물들이 대부분이라는 점이다.

따로 듣지 않아도 그 속에서 자연스럽게 학교의 역사를 느낄 수 있고 자부심을 느끼기에 충분할듯 하다.


뉴욕. 즐거운 출근 길. 여행이 주는 선물.


BBQ 치킨.
미국 여행 중 마지막으로 일한 곳이다.


출근을 하면 매니저 형이 반겨준다.
재미교포 2세인 Janice와 곧 미군에 입대한다는 Jay, 미모의 콜럼비아대학 한국인 유학생, 그리고 막 군대를 전역하고 여행을 하고있는 강원도 철원 촌놈, 멕시코에서 올라와 나 처럼 불법노동을 하는 친구들 2명. 이들이 작은 매장에서 옹기종기 일을 한다. 매니저 형과 사장님은 다른 장소의 매장을 둘러보러 다니느라 바빴고 Janice가 매니저가 해야 할 일을 도맡아 한다.

즐거운 출근길




멕시코 친구가 얘기한다.

여자친구 있어?
없어.
나는 와이프가 있어. 여자친구도 세 명이나 있어.
와우….

그냥 할 말도, 하고싶은 말도 없었다.
그 친구는 틈만 나면 여자 얘길 한다.

클럽에 갈래?
오늘 월요일이잖아.
원래 사람이 없을 때 성공할 확률이 높은거야.
아하….

운전면허 있어?
아니
나도 없어. ㅋㅋ 어제 경찰이 내 차를 세우는거야.
면허 없다며?
내가 아임 쏘 쏘리, 쏘리, 하니까 그냥 보내주더라고 ㅎㅎㅎ
아하….

그냥 멕시코 친구들은 쿨하구나 하며 넘어간다.

우벤띠노와




비비큐 바로 맞은 편에는 버블티 가게가 있다. 같은 건물을 반씩 나눠 쉐어를 하는 셈이다.
우리가 닭 몇 조각을 튀겨주면 버블티 가게 직원은 버블티 한잔 주는 식으로 우리는 매니저 몰래 거래도 많이 했다.
버블티 직원은 모두 타이완 사람이었다.

맞은 편 버블티 가게

그중 남자직원 한 명의 영어 발음은 도저히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그 친구와 대화를 할 때면 나는 "sorry? sorry? what was that?" 을 연발해야했다.

어느 오후, 그 친구가 또 말을 건다. 내가 또 한번 "Sorry?"하자. "I'm tired"라고 한다.
나도 피곤해서 "Yes, I'm tired too." 라고 하자. "No, I'm tired of you." 란다.
갑자기 뒷골부터 성질이 뻗쳤지만 일단 참기로 하고 돌아가 일을 보는데 뭔가 손에 잡히지가 않는다.

생각할 수록 점점 열이 받은 나는 그 친구를 계속 쳐다봤다. 
몇 번 눈이 마주치자 그 친구는 "what?"이라고 했고, 
나는 이때다 싶어서 싸움을 걸었다. "지하 창고로 따라와."
그제서야 그 친구는 미안하다고, 그런 뜻은 아니었다고 한다. 주위에서 말려줘서 일이 커지지 않아 다행이다.



하루는 비비큐 사장이 함께 한인타운에 있는 매장에 가자고 해서 얼씨구나 하고 따라나섰다.
미국에서 처음 타보는 자가용이었다.
꽉 막힌 맨하탄을 벗어나 한강대교같은 다리를 건널 땐 뉴욕 드라이브는 이런 맛이구나! 했다.
참 맛있었다.
도착한 매장은 맨하탄점 보다 10배는 커 보였다. 말이 비비큐 치킨이지 2층 건물에 술도 함께 파는 넓은 바였다.
치킨을 한 마리 뜯으며 사장이 얘기한다.


"너 나랑 일 해볼래?"
"네? 전 관광비자로 왔는데요?"
"그러니까, 내가 서포트 해 주면 비자 받을 수 있어."
"아, 괜찮은 것 같지만 전 대학교 졸업도 해야하고, 일단 곧 있으면 한국도 돌아가야하고,,,,"
"천천히 생각해봐. 괜찮은 놈 같아서 그래."


나를 이용하려는건지 뭔지 의심이 갔지만 그래도 듣기 좋은 말이었다.
결국 인연이 닿지 않아 끝 까지 함께 일 할 순 없었지만 그 한 마디가 내가 잘 하고 있구나, 앞으로 더 열심히 하자! 라는 각오를 다질 수 있게 했다.


일을 하다 어이없는 사기를 당하기도 했다.
한 흑인이 매장에 들어오더니 5불 짜리를 8개를 주며 20불짜리 2장으로 바꿔달란다.
나는 다른 일로 바빠 정신이 없는 상태에서 돈을 바꿔줬는데 자신은 5불짜리를 10장을 줬는데 왜 40불만 주냐고 한다. 
"어? 그랬나?" 하고 5불짜리 10 장을 줬을때는 이미 그 흑인은 사라지고, 난 아차! 한다.
정신을 차려야 한다.

어디서 들었는지 단골 학생 두 명이 와서 똑같은 짓을 하려고 한다.
이번엔 안당한다. 그들이 미리 건넨 5불 짜리 8장을 돈 통에 넣어두지 않고 따로 놔뒀다가 
"아까 10장 줬는데 왜 40불만 줘?" 하길래 
"이게 니네가 줬던 돈이잖아." 하며 아까 그 돈을 보여주자 그냥 나간다.

양심의 가책이 없는지 다음 날 아무일 없다는 듯 인사하고 들어와 치킨을 시켜먹는다.


이런 경험 하나 하나를 단순히 관광만 했다면 얻을 수 있을까?
그 당시는 사기당한 돈을 내 시급에서 제해야했지만 이후에 웃으며 이야기 할 수 있는 정말 특별한 경험을 얻었으니 그걸로 퉁 치면 된다.




뉴욕. 느리게 걷는 여행이 좋다.


여행책자를 보며 여행 루트를 정하다 보면, 남들이 가는 명소만 따라다니면 그건 뭔가 여행스럽지 않다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그러한 장소들이 관광명소가 된데는 이유가 있겠지만

도시를 관광객이 아닌 여행자의 눈으로 즐기고 싶다면 아무런 정보 없이 발 길 닿는대로 다니는 것이 더 즐거울 것 같았다.




발걸음 따라 가다가 나중에 어떤 책에서 보기라도 하면, 

"? 여기 내가 갔던 곳인데?" 하며 미소가 지어지는..

그런 여행이 하고 싶었다.

책자는 덮어두고 무작정 맨하탄으로 나갔다

50가부터 1번가 까지. 무조건 직진만 하면 많은 것을 놓칠까 싶어 지그재그로 걸었다.

겨울이었지만 날씨도 따뜻하고 여기저기 열심히 걸어다니다보니 어느덧 땀이 송글송글 맺힌다. 입고간 점퍼를 가방에 넣고 후드티만 입은 채 맨하탄에 심취해 이곳 저곳 돌아다니다 보니 미국 드라마나 영화에서, 혹은 다른 어디선가 본 것 같은 건축물들이 보이곤 한다.




Washington Square Arch. 



Washington Square Arch. 

미국 최초의 여성 신문기자인 Jessie Beals가 "캘리포니아의 꽃을 다 주어도 이 워싱턴 스퀘어 앞의 풍경과 바꾸지 않겠다."라고 말해 유명해졌다고 한다. 내 생각이 맞았다. 이렇게 우연히 맞닥뜨리는 풍경이 여행을 더욱 즐겁게 했다.

Gay Street 에서

Gay Street에서

Gay Street



혹시나 게이들이 추근덕 거리지 않을까 걱정하며 우연히 지나가게 된 게이거리를 비롯해 아이들이 나와서 뛰어놓고 있는 초등학교를 지나 아담하면서 아름다운 장식이 되어있는 건물 옆을 지나가는 연인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맨하탄을 걷고 또 걷는다. 






어느덧 허드슨강까지 걸어왔다. 태극1장을 연습하는 아저씨들도 있고 강 옆의 벤치에 엎드려 책 읽는 여인의 모습도 보인다. 강 건너편에는 Brooklyn이라는 동네도 보이고, 또 다른쪽엔 자유의 여신상이 우뚝 서있다. 

허드슨강

태권도 하는 아저씨들


엎드려 한가롭게 책 읽는 모습


Fashion의 중심지 SOHO, 차이나 타운, 뉴욕속의 작은 이탈리아인 Little Italy를 지나 어느덧 브루클린 브릿지 까지 걸었다. 여덟 시간을 걷다보니 체력이 다 되었다.

SOHO


SOHO



China Town



Little Italy


Little Italy



Little Italy



Subway 패스트푸드점이 보여 출출함을 달랠 겸 들어갔다.

음식을 주문한 후 계산을 하려고 보니 내 카드가 임시카드라서 계산을 할 수 없다고 한다. Temporary Card는 은행계좌 신청 후 실제 카드가 주소지로 도착하기 전에 임시로 사용할 수 있는 체크카드이다.
다른곳에선 잘 사용 했는데 왜 하필 이렇게 배가 고플때 문제가 발생할까,,, 
나는 당황해 하며 "Really?" 라고 묻자 옆에서 보던 매니저는 쿨하게 그냥 음식을 가져가라고 한다.
그래서 Thank you 하고 가져왔다.
공짜 점심. 난 항상 운이 좋다.

월스트리트에서 브루클린 다리로 가는 길목에 섰는데 공자 동상이 딱~! 중국인들 대단하다는 말 밖에 나오지 않는다.

공자 동상

브루클린 브릿지 (Brooklyn Bridge)




맨하탄 전체가 이런 훌륭한 관광지가 될 수 있다는 것이 멋지다. 자신들을 New Yorker라고 부르는 자부심 까지. 

하루종일 걸어서 오늘의 목표인 부르클린 브릿지를 건너고 나니 집에 간신히 돌아갈 체력만 남았다. 
지하철을 타고 스르르 잠이 든다.